선생님 짝사랑하는 걸까요? 동경하는 걸까요?

선생님 짝사랑하는 걸까요? 동경하는 걸까요?

저는 고3 여학생입니다. 한창 대입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으니 좀 웃기네요.

이야기는 두서가 없고 조금 길어요. 지난해 담임선생님이 엄청나게 권위적이신데다 군기를 잡으시고 시도 때도 없이 학생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와 압박을 주셨었어요.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지만 매일 봐야 하고 1:1 상담도 받아야 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부담되고 스트레스받고 이걸로 전학까지 고민할 만큼 힘들었고 우울증까지 왔어요.

그렇게 전학까지 고려하며 학교에 다녔는데 어쩌다 교내 프로그램을 2주 동안 무단으로 불참해서 담당 선생님이셨던 수학 선생님이 저를 불러내셨어요. 수학 선생님과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담임선생님께 이 일을 일러바칠 것 같아 또 다른 스트레스까지 받았어요.

수업시간에 누가봐도 정말 화난 목소리로 저를 교실 밖으로 불러내셨는데 막상 복도에 나가니 호통 치실줄 알았던 선생님께서 너무 다정한 목소리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시는 거에요.

 

담임선생님에게는 스트레스받고 집은 화목하지 못해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먼저 저한테 무슨 일 있느냐 물어봐 주신 분은 수학 선생님이 처음이셨어요. 처음 그 말을 듣고 울컥해서 1분 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30분 동안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 위로해주셨어요.

그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처음으로 속마음을 모두 이야기한 뒤로 수학 선생님과 급속도로 친해졌고 결국 전학 가지 않고 1년 동안 학교생활을 견뎌냈어요. 그리고 수학 선생님 수업만큼은 단 한 번도 졸지 않고 들어서 내신 1등급도 받았어요. 지금은 수업에 들어오시지 않지만, 제가 교무실에 자주 찾아가서 질문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때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던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항상 잘 챙겨주려 하시고 제 표정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먼저 안부를 물어봐 줄 만큼 너무 잘해주세요. 친구들이랑 같이 인사를 해도 항상 제 이름을 먼저 불러주세요. 그동안 수학 선생님과 있었던 일을 기억해보면 너무나도 다정하시고 따뜻한 분이신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수학 선생님께 가진 감정이 동경이 아예 아니라곤 부정 못 하겠습니다. 궁금해하는 걸 바로 알려주시고 매시간 눈이 초롱초롱하게 열정적으로 수업하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말 수학을 순수하게 사랑하시는 모습이 보여서 참 멋있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선생님보다는 스승에 가까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수학 선생님을 생각하다 보면 가끔 제 마음이 단순한 동경을 넘어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학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치고 싶어 일부러 화장실을 빙 둘러가고 이미 다 푼 문제를 잔뜩 가져가 괜히 이렇게 푸는 것이 맞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 설명해주시면 귀에 안 들어오고 선생님 얼굴만 쳐다보게 돼요.

그냥 수학 선생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영원히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이젠 복도에서 수학 선생님 목소리나 특유의 걸으시면서 땅을 박차시는 소리만 들려도 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려요. 공부해야 하는데 수학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요 ㅋㅋㅋ ㅠㅠ

 

 

동경이라 생각하면서도 요즘은 자주 여고생들이 한번쯤 겪는다는 '총각선생님 짝사랑'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짝사랑은 보통 연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우르는 단어같은데 저는 연인관계가 되고 싶은 것보단 그냥 수학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냥 너무너무 좋아요! 눈이 사슴처럼 크고 예쁘신 것도.. 키가 크셔서 정장 바지가 아주 조금 남는 것도.. 수업할 땐 존댓말을 쓰시다가 단 둘이 얘기할 땐 반말을 쓰시는 것도.. 담임 반도 아닌 제게 말을 걸어주시고 수능완성 풀었냐며 물어봐주시고 알려주시는 것도 좋아요.

수학 선생님의 단점도 분명히 있고 저에게 잘못하신 일도 많지만 다 용서가 되고 그냥 그 선생님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근데 수학선생님의 나이가 제 나이 2배가 넘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그렇게 보이는 건 병 아닌가요?... 매일 아침 점심 밤 공부하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수학 선생님만 생각나고 6개월 동안 계속 그래요.

짝사랑과 공경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너무 힘드네요. 이건 짝사랑일까요? 아니면 동경일까요?